오늘 성경의 신명기 부분을 읽어내려갔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러 가기 전 모세는 야훼의 말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 변덕스런 백성들을 위해 야훼가 모세를 통해 노래를 전파한다.
그 노래에는 다른 신을 믿지 말고 유일신 야훼를 믿으라는 말씀
후손 대대로 규율이 기리기리 기억되라는 의미로 모세는 노래를 알려준다
노래는 야훼의 이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전파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애국가와 교가를 부르고
군대에서 멸공의 횃불을 부르듯이
노래는 우리에게 작곡가가 만든 사상과 이념을 되새기게 만든다.
그렇다면 종교가 사라진 현시대
노래가 종교의 자리를 대체 한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종교는 곧 도덕 사상이다.
선악을 구별짓고 선이라 칭하는 것을 따르게끔 만든다.
해당 종교를 제창한 도덕 이념을 사람들이 추종하는 것이다.
무대에 선 목사의 말을 듣고 따라하며
십일조를 낸다.
아이돌의 어원은 "우상"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야훼를 숭배한 것도 우상 숭배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십일조를 내듯
현대인들은 아티스트에게 굿즈와 스트리밍 형태로 내가 번 자산의 일부를 헌납한다.
사실 물리적으로 보면 굉장히 웃긴 일이다.
무대에 선 가수는 소리를 지르고
우린 그걸 보고 즐거워하며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른다.
아티스트를 직접 만난 사람은 야훼를 직접 목도한듯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우리는 노래를 들으며 아티스트의 이념을 추종한다.
사랑에 대한 이념, 이별에 대한 이념
아티스트의 역량에 따라 정치에 대한 이념까지 확장 되기도 한다.
당장 떠오르는 정치적 이념을 띈 노래는
서태지의 난 알아요나 레드벨벳의 7월 7일 정도가 있다.
우리는 야훼의 말씀을 듣고 그와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신도들처럼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듣고 그와 가까워 지고 싶어한다.
이런 관점으로 멜론 차트를 본다면
멜론 차트는 이념 전쟁이다.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노래가 지루하다는 사람들
욕하고 돈자랑만하는 노래가 싫다고 하는 사람들
이별을 감성적으로 풀어낸 노래가 좋다고 하는 사람들
가사 내용에 구애 받지 않고 타격감 있는 노래가 좋다고 하는 사람들
희노애락을 담은 발라드나 트로트가 좋다고 하는 사람들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상과 이념을 따른다.
노래 장르 또한 사상과 이념을 대변한다.
힙합은 저항, 주체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트로트나 판소리는 일종의 한국의 한 정서와 관련 있다.
발라드는 일종의 슬픔
댄스는 일종의 기쁨을 떠올리게 만든다.
(댄스나 발라드의 유래는 잘 모르겠다)
간혹 댄스에 슬픈 가사를 넣어 극명히 대비되는 아티스트 모습에 이입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그들의 이념을 추종하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 종교는 자리를 잃었으며
현대인들은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고 있다.
삶의 목적을 잃었으며 의지할 수 있는 하느님은 사라졌다.
돈에 의지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모두 펑펑 쓸 만큼 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아마 그 의지 대상이 종교에서 음악으로 넘어간 게 아닐까
조선 시대 사람들이 양반들의 횡포에 저항하지 못하는 한을
판소리로 푼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까지 뻗치고 난 뒤
나도 꼭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상과 이념으로 남들에게 희망주고 추종하게 만들고 싶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아티스트를 신격화 하는 걸 견딜 수 있을까?
우리는 야훼가 거짓말 덩어리(소설에 불과하다 등)라 여기면서부터 그를 추종하지 않기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이 추종자들에 의해 끊임없는 음모론에 고통받은 것은 유명하다.
남들을 추종하게 하면 필연적으로 그만한 도덕적 무게감이 뒤따른다.
내 음악과 내 사생활을 별개로 보면 좋겠지만
인간들은 그러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겐 그러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음악은 종교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단순히 위로 받고 공감 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신격화한 아티스트를 숭배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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