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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인간 관계

by 어린 아이 202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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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

"살인을 하면 안된다."라는 것처럼 당연해 보이는 도덕 가치 또한 불확실하다.

성경 속에서 야훼는 사람들을 죽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돌로 누군가를 쳐죽이라고 지시한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도 조난 당했을 때 인육을 먹은 사건

자신의 딸을 강간한 강간범을 죽인 사건 등 예외적 사건이 존재하지만

눈가리고 아웅하듯

살인은 나쁜 것, 폭력은 나쁜 것이니 하면 안된다라는 믿음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어떤 내용을 이야기 할 때 자신의 주관성에 의지해 이야기 하고

자기 입장을 덧 씌운 형태로 주장한다.

본인이 직접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는 제 3자의 일이라도

자기 일인 것 마냥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따라 일을 판단한다.

이처럼 인간은 객관성을 가지기 매우 힘든 존재다.

마치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채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심지어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것 또한 무정부주의자에 해당한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 침묵하는 것 모두 일종의 의사표현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 관계는 본질적으로 "믿음"의 영역이 된다.

타인과 자신이 의견이 다른 지점에서 갈등이 생긴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뜻이고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A라는 주장과 B라는 주장이 있을 때

A가 효과적일 확률 70%, B가 효과적일 확률 40%로 임의로 느낀 채

가치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판단할 때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다.

실제로 겪은 직접적인 경험, 책이나 매체를 통해 겪은 간접적인 경험이 이해 해당한다.

우리는 서로 갖고 있는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중요도가 다르게 평가된다.

 

다시 갈등을 겪는 상황으로 돌아와서

만약 누군가와 의견이 다르다면 서로 간에

경험 공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경험 공백을 매우기 위해

자신이 겪었던 일, 근거로 생각하는 일을

칠판에 대고 강연하듯이 알려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존심과 같은 감정이 작용한다.

 

대게 갈등 상황은 즉흥적이며 한정된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설명하기 위한 충분한 자료와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언어적 능력도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기 때문에 대부분 이야기는 개별 사건을 두고 논박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B처럼 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내가 겪은 개별 사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사건을 떠올려봐라"

"그건 네가 사소한 걸 크게 봐서 그런 것이다."

 

라는 식으로 논쟁이 흘러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도돌이표같은 논박이 흐르고 갈등의 골이 깊어질 뿐이다.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서로가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지 파악하는 과정이 될 뿐이다.

 

결국 싸우지 않고 계속 잘 지내기 위해선

논리와 무관하게 상대방 말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천국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위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혹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천국을 믿는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명확한 것에 반감을 가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불확실한 것에 지독하리만큼 반감을 가진다.

남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현대인 입장에서 종교는 터무니없는 것이기에

그러러니 하고 넘기지만, 현대인 입장에서 모호한 것들에 갈등이 생기면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을 위해 저축을 더 해야한다." vs " 지금 당장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게 더 중요하다."

"카톡을 굳이 자주 해야하나 개인적 시간을 보장하자." vs "카톡은 친밀도를 나타낸다. 우리 관계가 중요하다"

"지난 번에 바다가 좋았으니 바다로 여행가자" vs "지난 번에 바다에 갔으니 이번엔 산으로 가자"

 

이처럼 크고 작은 의견대립이 존재하고 한 쪽이 양보한다.

앞서 말했듯 인간에겐 주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이 양보한 것은 크게, 상대가 양보한 것은 작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게 쌓이고 나면 서로 경험 공백이 생긴다.

과거에 내가 얼만큼 양보했는지 증거를 제시하고 따지며 비교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현상은 다수의 인간으로 이루어진 정치에도 해당한다.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vs "세금을 유지해야 한다."

"규율적인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 vs "현재 교육방식이 최선이다."

"인종차별을 멈춰야 한다." vs "싫어하는 것도 자유다."

 

이처럼 자유와 인권, 경제, 문화, 교육 등에 관한 다양한 의견 충돌이 존재한다.

 

친구나 연인관계에서는 양보가 쉽고 설령 맞지 않는다면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사회는 양보할만큼 서로 친밀하지도 않으며, 쉽게 떠날수도 없다.

설령 이 나라를 떠난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 또 다른 갈등이 존재한다.

 

이처럼 인간 관계와 달리 정치에서는

무조건 어느 집단에 속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이 존재한다.

조별과제를 한 번 시작했으면 팀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조별과제를 끝마쳐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조별과제와 달리 자신이 보기에 이상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속할 수 밖에 없다.

인구 단위가 천 만명 혹은 억 단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고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

 

세 가지 선택지 밖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경우

타인이 자신의 의견을 믿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경우

타인의 의견을 자신이 믿는 상황이 된다.

떠나는 것은 인간 관계(갈등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 관계는 "믿음"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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