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마리 달마시안>과 <크루엘라> : 오마주와 설정 변화
영화 <크루엘라>는 1961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의 프리퀄 작품이다.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크루엘라는 남자 주인공 로저와 여자 주인공 아니타를 괴롭히는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주된 특징은 모피를 사랑하며 새끼 달마시안의 가죽을 벗겨 모피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크루엘라>에서는 메인 주인공으로써 유년 시절을 다루는 영화다. 따라서 과거 <101마리 달마시안>을 오마주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기도 하고, <101마리 달마시안>과 다른 설정도 존재한다.
오마주 된 부분은 호레스가 강아지를 끌고 가는 주인을 보며, 강아지를 닮았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101마리 달마시안>에서는 강아지 퐁고가 창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이와 비슷한 대사를 한다. 그리고 <크루엘라>에서는 달마시안들이 호레스와 함께 티비를 보며 축구 구단 토트넘 이야기를 하는데, <101마리 달마시안>에서는 호레스와 달마시안들이 함께 퀴즈쇼를 보고 있다. 또한,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갓 태어난 새끼 달마시안을 보고 "쥐새끼"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있는데, <크루엘라>에서는 호레스의 강아지 윙크에게 쥐 옷을 입혀 강아지=쥐라는 상징을 표현했다.
설정이 변화한 부분은 아니타가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크루엘라>에서 로저의 직업은 변호사, 음악은 취미로 등장한다. 남작 부인에게 해고된 뒤,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히트곡 없는 음악가가 되게끔 연결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101마리 달마시안>에서는 호레스와 재스퍼가 크루엘라에게 돈을 받고 달마시안을 납치해오는 인물들 정도로 그려지는데, <크루엘라>에서는 에스텔라와 고아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가족같은 친구로 그려진다. 이러한 설정 변화로 인해 <크루엘라>에서 크루엘라 성격이 한 순간 변화하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이질적이고 불안정하게 다가온다. 가족같은 친구에게 악당같이 변하다가도 가족이라며 서로 도와주고 또 남 따윈 안중에도 없는 동정심 가진 캐릭터의 정체성이 마치 외줄타기 같다.
-Phase 1. 민무늬에서 무늬로
나는 <크루엘라>를 총 2개의 Phase로 나누어 봤다. Phase 1은 사회화를 위해 짓눌려진 에스텔라와 주체적인 크루엘라가 공존하는 단계다. 유년시절부터 남작 부인에게 펑크록 패션쇼로 복수하는 시점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Phase 1에선 민무늬 새끼 달마시안이 점박 무늬 달마시안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닮았다. Phase 2는 죽음과 부활이다. 그녀는 영화 결말부에 이르러 2번씩 죽고, 부활하기를 반복한다. 패션쇼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영화 끝까지 이에 해당한다. Phase 2에선 애벌레가 번데기 상태에서 죽고, 나방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과 닮았다. 이 포스팅에선 Phase 1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버려진 달마시안과 고아 에스텔라
우선 Phase 1에서 크루엘라는 강아지다.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이 전국에 방영된 이후 영국에선 달마시안 입양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과거 마차 호위견, 현재는 소방견으로 활동중인 달마시안은 실내에서 기르기엔 부적합한 견종이었다. 주인을 제외한 낯선 생명체에 쉽게 신경질적이며,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 가만히 있지 못하는 강아지였다. 따라서 <101마리 달마시안>에서는 한없이 온순하고 똑똑하며 귀여운 강아지로 등장하는 반면, <크루엘라>에서는 소파를 물어 뜯고 낯선 생명체에게 쉽게 이빨을 드러내고 짖는다. 호레스가 훔쳐온 달마시안을 다루느라 애먹는 장면, 어린 에스텔라를 뒤쫓고 에스텔라의 어머니에게 달려든 것도 이러한 활동성과 경계성의 표출이다. 영국에서 가장 많이 버려진 견종 1위를 차지한 달마시안의 이력처럼 크루엘라도 영화 시작부터 고아로 출발한다. 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존재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는 동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자신이 백조임을 모르는 오리로써 <크루엘라>에선 자신이 달마시안임을 모르는 민무늬 강아지로 등장한다.
-민무늬 : 버디와 쥐
달마시안이 실내에 길러지면서 성격을 죽이고 살아야 했듯이 에스텔라 또한 심성이 착한 어머니의 교육 아래 성격을 최대한 죽이고 살아간다. 그녀가 성격을 죽일 때면 교복을 단정히 입고, 모자를 눌러써 흑백으로 갈라진 헤어 색깔을 가린다. 즉, 무늬를 지우고 민무늬화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죽고 맨 처음 하는 일도 머리 색을 단색으로 염색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민무늬로 상징되는 동물은 총 2가지다. 민무늬 강아지 버디와 쥐다. 에스텔라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쓰레기 통으로 처박히는데, 그곳에서 반려견 버디를 발견한다. 버디는 잡종으로 추정되며 민무늬 강아지다. 크루엘라로 완전히 변신하기 전까지는 리젠트 공원 분수대에서 죽은 어머니에게 "말썽 부리지 않고 잘 할게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민무늬 버디가 그녀 옆에 앉아있다. 이처럼 말 잘듣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는 항상 민무늬 버디가 곁에 있다. 리버티 백화점에 첫 출근 할 때도 버디가 옆에 있다. 이는 순종적으로 무늬 없이 잘 살아보겠다는 에스텔라의 다짐이 담겨 있다.
그리고 에스텔라가 처음 크루엘라로 변신해 남작 부인을 만나러 갔을 때 화려하고 힘을 가진 남작 부인 뒷 편엔 달마시안이 있지만, 크루엘라 뒷편엔 버디가 있다. 그때 남작 부인은 크루엘라에게 "어디서 왔어?"라고 출신지를 묻지만 크루엘라는 버디와 눈이 마주치고 횡설수설해 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이는 아직까지 크루엘라보다 에스텔라에 익숙하며 고아 출신이라 출신지가 명확하게 없는 점을 대변한다.
그리고 펑크 록 패션쇼 후 에스텔라가 완전한 크루엘라로 거듭나 버려진 버디가 앵글에 잡힌다.
그리고 이 윈터 컬렉션에서 강아지 말고 또 다른 동물이 등장하는데, 그 동물이 바로 쥐다.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무늬가 없는 새끼 달마시안을 크루엘라가 "쥐새끼"라고 표현한다. <101마리 달마시안>과 오마주 겸 민무늬 강아지의 상징으로 활용된 듯 하다.
-두 가지 정체성: 에스텔라와 크루엘라
달마시안이 실내에선 천덕꾸러기 신세지만, 실외에선 늠름하고 총명한 마차 호위견이듯이 에스텔라 또한 두 가지 정체성을 갖고 있다. 에스텔라는 규칙지어진 실내에 위치한 달마시안이 상징하고, 크루엘라는 자유로운 실외에 위치한 달마시안을 상징한다. 에스텔라의 직업은 리버티 백화점 청소부인데, 그녀에게 "무늬"는 "지워야할 얼룩"이다.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옷을 더럽히고, 봉투가 터지며 쓰레기를 뒤집어 써 몸에 얼룩을 남긴다. 점주는 이를 보고 코를 막으며 불쾌해하고 에스텔라에게 오로지 "청소나 해!"라는 명령만 한다. 달마시안에게 무늬가 그의 아이덴티티이듯 에스텔라에게 무늬는 항상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며, 정체성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반대로 리버티 백화점에 남작 부인이 그녀를 찾아 오게 되는데, 더럽혀진 쇼윈도를 보고 근래에 본 작품 중 최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에스텔라가 남작 부인 밑으로 입사해 옷을 평가 받을 때 남작 부인의 칼에 피부가 베여 피를 흘리는데, 남작 부인은 신경도 쓰지않고 원단 팀에게 이 피 색깔과 동일한 원단이 있냐고 묻는다. 그리고 에스텔라는 고통에 울상짓기 보다 오히려 기쁨에 미소짓는다. 남작 부인으로 대변되는 세상에선 더 이상 얼룩은 제거 되어야 할 대상이 아닌 마음 껏 표출하는 대상이 되었다. 점주였다면 피를 닦으라는 말만 했을 텐데 오히려 이러한 얼룩에서 디자인을 발견하는 남작 부인의 행동이 대조된다. 이때부터 날개 돋힌듯 에스텔라는 크루엘라라는 무늬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내기 시작한다.
-오점 남기기
에스텔라가 자신이 점박무늬 달마시안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 즉 성장하는 과정은 오점 남기기로 표현된다. 유년 시절 사고를 칠 때면 교장실로 불려와 교장선생님이 에스텔라의 학생기록부에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대사를 친다.
"This is a blot on your copybook"
에스텔라가 학교에서 사고 치는 것이 이력에 오점을 남길 것이라는 의미다. 그가 민무늬 강아지에서 점박무늬 달마시안으로 성장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은 오점 남기기 형태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과정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말썽부리기, 두 번째는 직접적으로 더럽히기다. "오점을 남기다"라는 표현의 중의적 의미에 해당한다. 에스텔라는 교장실에 불려올 때마다 "말썽을 부린 것"이고, 의자에 앉을 때마다 입고 있는 옷이 바뀌며 각종 얼룩이 묻어 있거나 얼룩 패턴인 옷을 입고 있다. 각각 첫 번째 말썽부리기와 두 번째 더럽히기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 내내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는데, 리버티 백화점에 입사해 쇼윈도에 있는 옷을 더러운 쓰레기로 상징되는 신문으로 리폼하고 공간을 낙서로 더럽힌다. 그리고 점주는 이를 보고 말썽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 크루엘라의 첫 등장에서 겨울 패션쇼 드레스 코드가 Black & white 였음에도 의도적으로 빨간색을 입고가 말썽을 일으키고, 술잔을 떨어뜨려 바닥을 더럽힌다. 남작 부인의 런던 갈라쇼에서도 벽면을 낙서 조명으로 더럽히고,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해 남작 부인의 계획을 망쳐버린다. 남작 부인의 기자 회견에서 쓰레기 차를 대동해 더러운 쓰레기들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남작 부인의 주목을 모두 빼앗아 버린다거나, 남작 부인이 타고 있는 차에 올라가 일을 망치고 낙서가 적힌 문구를 옷에 매달고 있다. 또한, 이러한 "오점 남기기"는 스프링 패션쇼에서 절정에 이른다.
패션 상식: 런던 패션쇼의 피너클(하이라이트)은 스프링 컬렉션이다.
남작 부인의 드레스를 해충인 나방을 풀어 옷을 갉아 먹게 만들어 말썽을 일으키고, 나방의 번데기라는 쓰레기를 남겨 하이라이트 옷을 더럽힌다. 그리고 자신은 펑크[Punk, 쓰레기] 록 패션쇼로 그 동안 말썽 부리기로 치부되었던 주체성을 펑크 록으로 승화시키고, 그 동안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었던 무늬와 쓰레기는 펑크 룩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때 크루엘라는 달마시안 무늬로 된 옷을 입고 있는데, 이젠 더 이상 민무늬 강아지가 아니며 완전한 달마시안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크루엘라는 자신이 오리가 아닌 백조임을 깨달았고 완전히 성장한 것이다.
-펑크 록 : 스투지스 - I wanna be your dog
펑크 록 패션쇼를 하면서 크루엘라가 부르는 노래는 영국 록 밴드 스투지스의 "I wanna be your dog"라는 노래다. 원 제작자인 스투지스는 이 노래를 성적인 의미로 작곡 했다. 강아지에 목줄을 채워 지나다니는 여성 견주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의 강아지처럼 그녀와 함께 몸을 뒹굴고 싶다는 의미의 내용이다. 이를 크루엘라 상황에 대입해보자면 사회로부터 억압받은 크루엘라는 주체적인 자신의 모습을 지향하면서도 내면에선 사회와 연인처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인정받고 싶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회로부터 버림 받은 존재가 누구보다도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갖길 바란다는 점에서 록 패션쇼는 화려하면서 슬픈 장면으로 다가왔다.
-관련 포스팅
(1)영화 크루엘라 : 민무늬 강아지와 달마시안 해석(오마주) https://streamof.tistory.com/92
(2)영화 Cruella 리뷰 : 죽음과 부활 그리고 나방 https://streamof.tistory.com/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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