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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정보

(2)영화 Cruella : 죽음과 부활 그리고 나방의 뜻

by 보라고둥 2021.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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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se 2 죽음과 부활

 

 펑크룩 패션쇼를 기점으로 대강 Phase 2가 시작된다. 그 전까지 내용 Phase 1이 민무늬 에스텔라가 그동안 억압되어 왔던 무늬 Cruella를 점차 깨달아가는 내용이었다면, Phase 2에서는 민무늬 정체성을 죽이고 완연한 무늬 Cruella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흡사 나방이 애벌레로 지내다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끝에 자유로운 나비 혹은 나방의 삶이 되는 모습과 유사하다. 이러한 나방의 특성은 이 영화에서도 차용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펑크 록 패션쇼는 무늬 Cruella라는 정체성을 찾는 성장의 마침표이자 무늬 Cruella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출발점 역할을 동시에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상징하듯 패션쇼에 등장하는 Cruella의 모습은 번데기에서 탈피하는 나방을 상징하듯 일렬로 펑크(Punk, 쓰레기)룩을 입은 안무가들이 줄을 서 있다 카메라가 Cruella를 찾아들어가며 한 꺼풀씩 벗겨지며 무늬를 입은 Cruella가 등장하는 묘사 방식을 취하고 있다. 번데기는 탈피 후 허물 즉 쓰레기가 되므로 펑크 룩과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

영화 <Cruella> 펑크룩을 입은 사람들이 흩어지는 모습

 

-죽음: 약자의 권리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 하기 전 디즈니사가 왜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다루어야만 했는지부터 이야기 하겠다. 21세기는 과거에 비하면 두드러질 만큼 다양성과 약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다. 빈민자의 인권, 흑인의 인권, 여성의 인권 뿐만 아니라 동물의 인권까지 이리도 다채롭고 깊이 있게 모든 생명의 권리가 논의된 적은 없다. 예전엔 정치나 어떤 제도, 특정 사건에 국한되었다면 요즘엔 종합적으로 논의가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이 영화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동물의 권리다. Cruella는 새끼 달마시안의 가죽을 벗기려하는 빌런이다. 1961년 처음 등장했을 때는 혐오감은 줄 수 있을지 언정 어느 정도 수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동물 보호 협회의 반발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에선 동물 애호가 혹은 생명 권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본 티가 많이 난다.

 버디는 유기견 출신이었으며, 윙크는 한 쪽 눈을 잃은 장애견이다. 그리고 1961년 <101마리 달마시안>이 개봉된 이후 영국 내 달마시안 유기견량이 많아졌으므로 이와 같은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영화가 끝나고 애완동물에 관심이 생겼다면 먼저 근처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하라는 안내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 Cruella는 달마시안과 인간을 포함한 어떤 생명체도 죽이지 않는다. 강아지 가죽을 벗기려하는 빌런임에도 그 어떤 강아지도 죽이지 않는다. 죽이라고 명령하거나 묘사하는 장면도 없다. 넌지시 "저 개 가죽을 벗겨 코트를 만들면 예쁘겠어"라고 말했다가 재스퍼의 따가운 눈초리에 "농담이야"라고 화제를 바꾸는 게 전부다. Cruella가 재스퍼의 눈치를 보듯 디즈니사도 시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영화 <Cruella> 타인의 시선에 억압되어 있는 Cruella

 

-재스퍼 : 시대의 감시자

 

 극 중 재스퍼는 굉장히 독특한 인물이다. 배우이면서 동시에 관찰자 역할을 한다.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듯 Cruella에게 잔소리한다. 내 눈에 재스퍼란 인물은 굉장히 거슬리며 신경 쓰이는 인물이었다. Cruella가 터질 것 같은 분노와 욕망을 표출하고 있을 때면 입을 연다. "감사하다는 말이 빠진 거 아니야?" "절대 살인은 안 돼" "개 가죽을 벗긴다고?" 현 시대의 시선이 재스퍼라는 인물로 환생한 것 같았다. Cruella가 남작 부인을 죽이려 가는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그녀를 지켜 보는 건 재스퍼가 유일하다. 그리고 Cruella가 남작 부인을 죽이지 않자 미소짓는 것도 재스퍼가 유일하다. 그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Cruella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복기시키는 존재다. 이는 영화 제작사에 요구하고 제안하는 관객의 시선을 닮았다. 그와 Cruella의 설정은 상극이다. 궁합으로 치면 절대 만나지 말아야 될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영화 <Cruella> 살인을 말리는 재스퍼

 

 

-남작 부인과 Cruella : evil과 De vil

 

Cruella는 주인공이자 악당이다. 그녀는 리젠트 공원에서 죽은 캐서린에게 자신은 더 이상 착한 에스텔라(Sweet Estella)가 아니며, Cruella라고 선언한다. 더불어 그녀는 남작 부인보다 자신이 한 수 위라고 말한다.(I'm better) 극 중 남작 부인은 Evil People로 악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반면, Cruella는 Cruella De vil로 악한 존재 그 자체다. 쓸 때는 데빌 읽을 때는 드빌로 불리는 그녀의는 악마다. 영화 결말 부 Hell hall로 들어가는 점이나 화재로 죽는 장면에서 마방진과 비슷한 형태로 불길이 휩싸이는 점을 통해 그녀는 악마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evil에서 D가 붙어 Devil이 되듯 단어 그대로도 남작 부인보다 악한 면에서 한 수 위인 존재다. 하지만 그녀가 Evil보다 악하다는 이 설정은 앞서 말한 재스퍼와 만나면서 희석되고 불안정해진다. 과연 미치광이 살인마인 남작 부인보다 말썽을 일으키고 과거에 절도를 일삼은 Cruella가 더 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두 설정간의 대립은 관객들 입장에서 개연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영화 <Cruella>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마방진을 상기시키는 불꽃

 

-2번의 죽음, 2번의 부활 : 나방

 

 영화 속 Cruella는 2번 죽고, 2번 살아난다. 첫 번째는 화재로인한 죽음, 두 번째는 절벽에서의 낙사이다. Cruella는 첫 번째 죽음 이후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곧바로 리젠트 공원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을 길러준 부모 캐서린에게 이별을 고함과 함께 Sweet Estella에게도 이별을 고한다. 이는 내면(성격)에 있던 에스텔라를 죽이는 장면이다. 그리고 두 번째 죽음에선 친 엄마인 남작 부인을 감옥으로 보냄으로써 이별을 고하고 Estella van hellman에게도 이별을 고한다. 이는 외적(법적) 에스텔라를 죽이는 장면이다. 그녀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부모로부터 받은 에스텔라(애벌레)를 죽이고 자신만의 정체성 Cruella(나방)로 재탄생한다. 나비가 아닌 나방이 그녀의 상징인 이유도 아마 그녀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의 이미지와 닮은 악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두 번의 죽음 모두 그녀의 모습에서 나방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 죽음에서는 리젠트 공원으로 향하기 위해 우체부의 오토바이를 빼앗는데 이때 도로를 내달리는 Cruella의 뒷모습이 찍혀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망토는 흡사 나방의 날갯짓과 닮았다. 그리고 두 번째 죽음에서는 절벽에서 떨어질 때 스커트를 리폼한 낙하산으로 나방의 날개 모양을 암시한다. 두 과정 모두 그녀가 죽이고 태어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나방은 부모로부터 받은 애벌레의 모습을 번데기 속에서 산성물질로 모두 죽여 액체상태로 변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완전 다른 형태인 나방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되려 애벌레 시절보다 나방일 때의 모습이 부모 나방의 모습과 가장 닮았다.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Cruella의 모습에서도 부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캐서린의 모습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은 남작부인의 모습을 닮았다고도 생각한다.

영화 <Cruella> 나방의 날개짓과 닮은 그녀의 코트

https://youtu.be/IQheZ1qJsx8

 

-관련 포스팅

(1)영화 크루엘라 : 민무늬 강아지와 달마시안 해석(오마주) https://streamof.tistory.com/92

(2)영화 Cruella 리뷰 : 죽음과 부활 그리고 나방 https://streamof.tistory.com/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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