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1
군나르 시르베크
이학사
1판 5쇄 2020년 7월 20일
259p - 295p (37p)
독서마라톤: 1,841/ 42,195 (4.36%)
-잡담(서론)
철학 입문서임에도 참 어렵다.
40쪽도 안되는 분량을 들고 하루종일 씨름하고 있는 게 뭐하고 있는 짓인가 싶다.
저자가 문장을 알기 쉽게 쓴 것 같은데, 철학에 익숙치 않은 나와 용어를 달리 사용하는 게 참 어렵다.
"추상"이라는 단어도 "추상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막연하게 얽혀 있는 것을 상상했는데,
사전을 뒤져보니 여러 사물에서 공통 특성, 속성을 뽑아낸 것이라는 완전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외에도 법률, 형이상학, 존재, 신의 섭리와 같은 단어들이
철학가들마다 조금씩 의미가 달라 그걸 파악하는데도 한참이 걸린 것 같다.
참,책을 읽으면서 초라함을 많이 느낀다.
유익한 책들은 읽을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는 책 같다.
Q)아퀴나스가 어떻게 철학과 기독교를 조화시키려고 시도했는지 설명하라, 자연적 인식에 관한 그의 견해를 참조하라.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독교화시킨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주의를 많이 닮았다.
그 중 크게 잠재태와 현실태 이론, 4원인 이론, 우주의 위계질서 이론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그가 본 자연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위계질서와 동일했다.
제 1원인을 신으로 대치한 것만 빼며 말이다.
아래에 있을수록 열등하며 잠재태를 많이 가지고 있고,
위로 갈수록 우월하며 현실태를 많이 갖고 있다.
잠재태는 변화하여 현실태를 실현하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이론과 똑같다.
질료, 형상, 목적인, 작용인으로 구분되는 4원인도 똑같이 따른다.
또한, 아퀴나스는 개념실재론도 수용하였는데,
보편적 의미를 가지는 형상은 대상 속에 존재하며 대상에 의존적이다.
쉽게 말하면 갈색이라는 보편적 특성이 단순이 우리가 이름을 붙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들처럼 실재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비물질적이지만 칠판에 수학 공식을 적을 수 있지 않은가?
대신 대상 속에 특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따로 "갈색"이라는 물질이나 존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동일하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메세지는 "신"에게 있다.
신은 인격신으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선을 추구하는 존재다.
신은 더 이상 실현할 잠재태가 없는 존재이며, 완전하다.
신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계획했으며, 인간은 다른 존재를 다스릴 권한이 있다.
모든 것은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
Q)법과 토대에 관한 아퀴나스의 견해를 설명하라.
아퀴나스는 신이 인격신으로 존재해 의지를 갖고 선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신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만든 신의 섭리를 영원법이라고 하며,
이는 신의 섭리를 표현하는 이성의 칙령을 뜻한다.
이러한 영원법이 인간이 알 수 있는 형태로 표현 된 것이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살인을 하면 안된다."와 같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법률은 통치자가 피통치자들의 공동선을 위해 만들어 공표한 것이다.
중세 시대는 고대 도시국가와 달리 봉건제였기 때문에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아퀴나스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에도 동의했는데,
이교도들도 이성을 통해 좋은 삶, 좋은 정치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이는 신앙, 계시와는 무관하다.
다만, 비기독교인들은 "구원"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또한, 영원법(신법)은 오로지 신앙,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으므로 기독교인들만 가능한 통찰이였다.
아퀴나스가 말한 인간의 최종 목표는 좋은 삶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를 기독교 국가로 가기 위한 첫 단계, 발판으로 보았다.
철학과 기독교를 종합하면서 기독교 아래 모든 것을 위치시킨 것이다.
'독서일지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과학(기계론)의 발흥 [서양철학사] (0) | 2021.06.10 |
---|---|
마르틴 루터 [서양철학사] (0) | 2021.06.10 |
아우구스티누스 [서양철학사] (0) | 2021.06.10 |
고대 회의주의 [서양철학사] (0) | 2021.06.10 |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서양철학사] (0) | 2021.06.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