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1
군나르 시르베크
이학사
1판 5쇄 2020년 7월 20일
208p - 229p (22p)
독서마라톤: 1,775/42,195 (4.21%)
Q)회의주의자들이 논한 문제들은 어떤 것이었나?
감각 경험과 귀납법, 연역법이 있었다.
고대 회의주의는 인식론적 입장에서 회의주의였다.
인간이 참된 진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탐구행위를 거부하고 비판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이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는 희망에 고통 받지 말라는 스탠스였다.
감각 경험과 귀납법, 연역법 모두 인간이 진리에 다가설 수 없는 한계를 묘사하는 내용이다.
어떤 온도가 누구에겐 따뜻할 수도 누구에겐 차가울 수 있는 것처럼 감각은 주관적이다.
따라서 감각은 대상의 상태 혹은 관찰자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리고 귀납법은 경험적인 방법인데,
여태 해가 동쪽에서 떴다고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뜨리란 어떠한 보장도 없다.
연역법은 전제를 바탕으로 어떤 규칙에 따라 새로운 명제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전제를 증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Q)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는가?
위 논의들을 통해 인간이 경험적으로 느끼는 것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외의 방법으로 인간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모든 지식에는 불완전성이 존재하며 의심할 수 있다.
그리고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
확률적으로 높은 개연성을 가진 추론이 최대한의 지식이다.
-잡담(마무리)
삶을 살아가면서 회의주의적 생각을 많이 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항상 내가 어떤 걸 남에게 주장하고 설득하려고 하면, 돌부리에 걸린듯 턱 하고 멈추는 일이 잦았다.
확실하게 고집 부릴 수 있는 견해가 세상에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치고박고 싸우는 주제는
대부분 답이 없는 혹은 저마다 근거가 있는 옳음과 옳음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주장을 전개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죄책감을 느낀 이유는 내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은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남에게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것과 믿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건 다른 문제다.
인간은 확실하지 않고 그럴듯 해보이는 것도 믿고 사니까.
예를 들어 살인을 하면 안된다라는 명제가 있을 때
해도 된다와 하면 안된다라는 입장 모두 반박 가능하다.
해도 된다 입장은 황금률을 근거로 반박하면 되고,
하면 안된다라는 입장은 연쇄 살인마를 근거로 반박하면 된다.
세상 대부분의 지식이 모두 반박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내 의견을 말할 때 항상 죄책감을 느낀다.
더불어 내게 이런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아무리 합리적이고 마땅한 주장이라도
자기 말이 무조건 맞다고 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감도 높은 편이다.
밥 벌어 먹고 살려면 회의주의적 입장은 정말 도움이 안된다.
마케팅이 곧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꼭 필요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이니까.
돈을 모으려면 내 주장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 어떤 누구도 판매자가 의심하는 물건을 사려하지 않을테니까.
그게 무형이든 유형이든 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물건에 자신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자신 없는 사람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는다.
'독서일지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과학(기계론)의 발흥 [서양철학사] (0) | 2021.06.10 |
---|---|
마르틴 루터 [서양철학사] (0) | 2021.06.10 |
토마스 아퀴나스 [서양철학사] (0) | 2021.06.10 |
아우구스티누스 [서양철학사] (0) | 2021.06.10 |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서양철학사] (0) | 2021.06.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