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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후기

007 카지노 로얄 - 베스퍼 술잔에 얽힌 비밀

by 어린 아이 2021.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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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카지노 로얄
C+


-총평

모난점 없이 밸런스 좋은 영화. 여기에 극을 이끌어가는 에바 그린, 매즈 미켈슨의 연기력과 그들의 캐릭터 베스퍼, 르 쉬프는 제임스 본드를 밀어낼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부드러운 외모에 낮은 목소리는 베스퍼를 신비하게 만들었고, 남성의 자존심인 생식기로 고문할 만큼 처절한 위치에 놓인 르 쉬프가 무게감이 있었던 것도 매즈 미켈슨의 연기력 덕분이었다. 다만, 카지노가 배경임에도 카지노의 존재감이 미약하다는 게 아쉬운 작품이었다. 진부하게 올인으로 패를 늦게 까는 자가 승리한다.그리고 <카지노 로얄>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1편인 만큼 메인 주제가 살인 면허 00을 발급 받은 후 첫 공식 임무였다. 하지만, 일 처리를 너무 베테랑처럼 해서 첫 면허 발급을 받았단 사실이 전혀 부각되지 않았고 대신 첫 사랑과 첫 배신만 남았다. 이 스토리는 1시간이 지나 베스퍼가 등장하고부터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그로 인해 초반부 내용이 주제를 위해 굳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공항 테러를 막는 본드, 계획이 틀어져 비통해하는 르 쉬프, 베스퍼의 등장으로 시작했어도 됐다. 앞서 말한 카지노 내용과 더불어 결말도 맥빠지는 편.
그러나, <카지노 로얄> 한 편만 봤을 땐 스토리가 빈약하더라도 <카지노 로얄> 이후의 후속편들은 항상 <카지노 로얄> 덕을 보게 만들었다. 베스퍼 캐릭터화를 너무 잘했기에 <퀀텀 오브 솔라스>는 그 덕을 보고, 대사관을 날린 것은 "냉전 시대 요원이 현대에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스카이폴>과 <스펙터>에서 풀어낸다. 시리즈 전체로 봤을 땐 정말 스타트를 잘 끊은 것이지만, 이 영화 단독으로만 봤을 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프닝 시퀀스]

총열 시퀀스는 살인 면허를 처음 발급 받는 편인 만큼 살인 장면과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리고 제목과 주 무대가 카지노인 만큼 포커 문양이 오프닝 시퀀스에 활용됐다. 특이한 점은 <Dr.No>와 <퀀텀 오브 솔러스>, <스펙터> 모두 오프닝 시퀀스에 여성이 등장하나 <카지노 로얄>에서 만큼은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제임스 본드의 첫 사랑 베스퍼 린드를 다루고 있는 편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에바 그린을 소개할 때 포커 카드 테두리으로 스펙터를 상징하는 문어 다리를 표현했다. 그가 스펙터의 이중 첩자임을 감안했을 때 인상적인 장면이다. 또한 하트 7로 007을 표현해 제임스 본드가 사랑에 빠짐을 암시하고, 본드의 몸에 총알이 꽂히고 돈다발이 튀어나오는 장면으로 이 영화의 결말 부분을 떠올리게 만든다.
테마송은 "You Know My Name"(넌 내 이름을 알지). "그 누구도 널 구해주지 않기에 스스로 무장해. 승산(카지노 도박 확률)은 널 배신할 거고, 난 널 대신할 거야." ~ "차가운 피가 내 혈관에 흐르고, 넌 내 이름을 알아" 라는 내용으로 차갑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켰다. 혹은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된 본드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베스퍼의 배신 이후 얻은 교훈)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오로지 제임스 본드만을 설명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베스퍼 린드 얼굴이 살짝 등장하긴 한다)

 

-스토리 ☆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위화감을 <카지노 로얄>에서 크게 느꼈다. 본드는 바람둥이다. 첫 작품인 <Dr.No>때 부터 요원, 일반인 심지어 범죄자의 최측근까지 모두 꼬셔댄다. 어떤 추파도 없이 슬쩍 눈만 마주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들이 본드와 함께 침대로 향한다. 본드가 워낙 매력적인 인물이기에 그 동안은 그럴 수 있는 설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알렉스 디미트리오스의 부인을 꼬셔서 정보를 알아내는 설정은 그간 본드의 행동을 미루어봤을 때 납득 가능한 설정이다. 하지만, 베스퍼 린드의 경우 알제리 목걸이의 연인 유세프 때문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영국을 배신한 이중 첩자였다. 그런 그녀가 본드와 사랑에 빠졌다. 이 부분이 잘 납득이 안됐다. (심지어 <퀀텀 오브 솔러스>에선 베스퍼가 유세프의 머리카락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유세프가 죽은 사람인지 살아 있는 사람인지 제대로 설명해주는 부분이 없었기에 베스퍼 린드가 불륜을 하고 있는건지 사별한 뒤 본드에게 위로를 받는 건지 애매모호했다. 적군의 아내를 손쉽게 꼬시는 장면을 앞에서 봤기 때문에 본드가 그냥 매력적이라 사랑에 빠진거라 느껴졌고 당연히 개연성이 떨어진다 생각했다.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죽은 가짜 시체가 발견된 걸 보면 본드와 베스퍼가 사랑에 빠졌을 때도 분명 유세프는 납치된 채 생사가 불분명 했던 것 같다. 아직도 시간상 어떤 게 맞는 건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할 경우 스토리 상 베스퍼가 헤프게 느껴져 몰입이 살짝 안 됐다. 게다가 샤워실에서 베스퍼를 위로해주는 본드의 모습은 단독으로 봤을 때 명장면이라 부를만 하나 카지노(르쉬프, 여유롭게) - 격투(르쉬프, 거칠게) - 카지노(르쉬프, 짧게) - 샤워실(베스퍼, 여유롭게) 장면이 이어지면서 샤워실 장면이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지노 - 격투는 메인 빌런 르 쉬프와 본드의 대립이 중점인데, 격투에서 긴박하게 호흡을 다룬 후 카지노에서 한 숨 돌리려던 찰나 "셔츠가 바뀌었네요." 정도의 짧은 쇼트로 치고 샤워실(베스퍼) 장면으로 이어져 흐름이 끊긴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딜러의 대사 "모두들 오셨으니 게임을 계속하죠." 이후 갑자기 방으로 화면이 바뀌었기에 갑자기 단절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협박 당한 르 쉬프의 감정선이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그것도 해소가 안 돼 더더욱 끊긴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줄곧 남자다운 모습만을 보여준 본드가 그녀를 안아주고 공감해주는 장면도 머리에 없던 모습이었기 때문에 샤워신 씬이 베스퍼를 본드와 잇기 위한 인위적인 장면으로 느껴졌다. (덕분에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매티스를 안아주는 장면은 어색함 없이 봤다.)

그리고 배경이 카지노인 만큼 도박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 부분 또한 진부한 클리셰를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패를 마지막에 까는 사람이 이기는 것과 올인 단판 승부로 게임이 끝나는 점이 그러했다. 수많은 도박 영화에서 풀 하우스나 포카드를 포카드나 스트레이트 플러쉬로 이기는 장면이 왕왕 등장한다. 메인 테마가 카지노임에도 카지노는 병풍 수준으로 활용된 시나리오인 것 같아 아쉬움을 남겼다. 시나리오에서 독특하고 재미있는 부분은 카지노와 무관한 소재에서 이루어졌다. "젓지 않고 흔들어서"라는 명대사를 활용해 신비로운 여인 베스퍼를 술에 접목시킨 점, 기괴한 르 쉬프의 고문법을 시작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중후반부 연출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영상미 ☆

 

대형 프랜차이즈 시리즈나 영화에서 볼 법한 영상미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샤워실 씬인데, 슬픈 연인이 샤워실 물을 맞는 장면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연기 ☆☆

베스퍼 린드로부터 느낀 위화감을 잠재운 것은 아무래도 베스퍼 린드 역을 맡은 에바 그린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까칠하지만 여리고 부드러운 그녀의 아우라는 중저음 톤의 영국식 발음과 여리여리한 외모 덕분이었다. "달콤하지만 뒷맛이 씁쓸해 한 번 맛 들이면 다른 것 못 마시지."라는 대사가 베스퍼를 가장 잘 표현한 대사라는 점에서 그녀의 연기가 절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중적인 면모는 그녀를 신비롭게 만들었고, 알제리 목걸이 얽힌 사연있는 베스퍼 역으로써 적합한 인물이었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베스퍼에게 홀린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었을 것.

에바 그린 외에 눈에 띈 연기자는 르 쉬프 역을 맡은 매즈 미켈슨이었다. 많은 장면에서 그를 위주로 돌아가는 만큼 그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허약하다. 르 쉬프는 천식 흡입기를 달고 사는 천식 환자이며, 가끔 왼쪽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항상 "돈 갚을게요!"라는 대사를 달고 살며, 애인의 손목이 잘려나가는 상황에서도 무력하게 내팽게 쳐져 있다. 직접 싸우는 씬 또한 없으며, 그의 최후 또한 허무하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메인 빌런의 무게감을 유지해 간 건 배우 매즈 미켈슨의 몫이 컸다는 뜻. 그의 걸걸하며 저음 톤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빛, 여유로운 제스쳐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따금씩 보여주는 피눈물은 관객들에게 병약함이 아닌 기괴함을 선사했고, 천식 호흡기는 그가 압박받고 있는 초조함을 표현했을 뿐 유약함을 드러내진 않았다. 따라서 <카지노 로얄>에서 베스퍼 린드와 르 쉬프 역을 맡은 두 배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마 관객들이 <카지노 로얄>에 열광하게 만든 것도 이 둘의 몫이 굉장히 컸을 것.

 

-음향 

 

긴박감 있는 음향과 슬픈 음향의 적당한 배치. 특출나게 활용된 장면은 못 느꼈다.

 

-연출 ☆

 

인상적인 연출은 독이 든 잔이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뱀을 떠올렸다. 얇게 썬 레몬 껍질이 유리와 술에 왜곡되어 뱀이 꽈리를 튼 듯 나선형 모양을 하고 있다. 나선형 모양은 일반적으로 어지러움을 상징한다. 그가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것과 대응된다. 여기에 더해 술 이름이 "베스퍼"인 만큼 술의 주인인 베스퍼 린드도 떠오르게 만든다. 그녀는 본드를 배신했다. 성경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서로 짝을 이뤘다. 신은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제외한 것들만 먹으라고 경고하는데, 이브는 뱀의 간교에 빠져 결국 선악과를 먹게 된다. <카지노 로얄>에서 베스퍼는 제임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후반부에 상금을 들고 도망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제임스의 목숨을 살려주는 댓가로 미스터 화이트에게 헌납하기로 한 돈. 결국, 뱀의 간교에 빠져 개인적 욕망인 사과를 먹기 위해(알제리 연인을 구하기 위해) 신(영국)을 배신한 이브(베스퍼)지만, 사랑하는 아담(제임스)에게도 호의로 사과를 건네준다.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아담을 위한 사랑도 있었다는 것. 따라서 베스퍼의 배신과 술의 독약, 나선형 모양이 이어져 꽤나 뜻 깊은 연출이었다. (술 "베스퍼"가 제임스 본드를 배신하지만, 연인 베스퍼가 그를 구한다.)
그 동안 제임스 본드는 매 편마다 "젓지않고 흔들어서"라는 대사를 하며 술을 자주 즐긴 만큼 술은 그에게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카지노 로얄>에서 그는 포커를 치던 도중 웨이터에게 술을 주문하는데, 술의 레시피는 고든스 진 3, 보드카 1, 키나 릴레 1/2에, 얇게 썬 레몬 껍질을 섞은 것. 그는 술 맛에 만족해 하며 이름을 짓고자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베스퍼 린드와 관계가 깊어진 뒤 "뒷맛이 씁쓸한 만큼 한 번 마시면 이것만 마시게 되거든."이라는 대사를 하며 술 이름을 연인 "베스퍼"로 짓는다. 그리고 그에게 독이 든 술 "베스퍼"는 그에게 치명적인 아픔을 주고 떠난 베스퍼처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이 연출은 베스퍼라는 캐릭터에 힘을 실었다.

그 외에 르 쉬프의 천식 호흡기와 피눈물 등의 연출이 이루어졌는데, 대부분 연출보다 캐릭터 설정에 가까운 내용들. 더 좋은 점수를 줄지 말지 고민이 많았으나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연출이 술잔 외에 없었으므로 평범한 점수를 줬다. (스토리에서 샤워실 씬에 아쉽게 느낀 연출도 있었으므로)

 


+)신기하게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와 비슷한 대사가 등장한다.


"전사는 지나치게 달콤한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여자를 좋아한다 가장 달콤한 여자라도 역시 쓴 맛이 있으니까."

어찌보면 제임스 본드가 니체의 초인과 가장 닮은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운명에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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